경찰, 나흘만에 화물연대 조합원 10여명 체포
달라진 정부 입장에 경제계·노동계 일제히 촉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총파업이 사흘 넘게 이어지자 경찰이 파업 현장에서 조합원 30여명을 체포했다.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 태도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경제계와 노동계가 정부 입장에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출근길에 "정부가 법과 원칙, 그 다음에 중립성을 가져야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자기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해나간다"고 말했다.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노동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이번 파업에 대해 "노사 갈등은 자율 원칙을 토대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되, 불법 행위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해달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강성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당선인 시절 거리 유세를 통해 "전체 근로자의 4%를 대변하는 강성노조는 완전히 치외법권"이라며 "(강성노조 때문에) 많은 기업이 엉터리 정부, 강성노조와 싸우기 싫어 보따리 싸서 해외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선 이후 공약집에서도 강성 노조의 사업장 무단 점거, 폭력 행위가 발생하면 엄정한 법 적용으로 이같은 행위를 없애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실제 경제계에서는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엄중해졌다는 분위기다.
올해 초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본사를 19일 동안 불법 점거했을 당시, 경찰은 단 한 명의 노조원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 지난해 현대제철 협력업체 노조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50여일간 불법 점거할 때도 경찰은 노사간의 해결을 강조했을뿐 노조원을 체포하는 사태는 없었다.
정부의 강경 대응에도 현재 노동계는 이번 화물연대 파업을 시작으로 대규모 '하투(夏鬪·여름투쟁)'를 시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다음 달 2일 서울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은 7월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노조 활동이 없던 기업들의 임직원들도 움직임에 나섰다. CJ제일제당은 설립 이후 70년 만에 첫 노동조합 투쟁 위기를 맞았다.
CJ제일제당 노조는 10일 공지문을 통해 "노사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섭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이전까지 보류했던 대응 및 활동을 진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은 1953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노조가 없다가 지난 3월 일부 임직원 주도로 첫 노조가 결성됐다. 현재 조합원은 1000여명 정도로 전해졌다.
하투에 이어 기업 산하 노조들은 대법원 판결 이후 회사에 임금피크제 폐지에 대한 사측 입장을 잇따라 공식 요구하고 있다. 임금피크제가 노사 간 쟁점으로 부상하는 모습이지만 기업들은 정부의 강경 대응에 당초보다 큰 우려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도 최근 임금피크제에 대한 사측 입장을 요구하는 노조에 "합리적이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 삼성전자 4개 노조가 참여 중인 공동교섭단이 지난 3일 사측에 공문을 보내 임금피크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 것에 대한 회신이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최근 노조의 입장 표명 요구에 삼성전자와 같은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노사 분규 건수나 파업 중인 사업장 수 등이 증가하는 추세로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 예고로 기업들이 강경 노조에 대한 처벌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기업을 둘러싼 대뇌외적 경제 상황이 엄중한만큼 정부의 대응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 등을 요구하며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 안전운임제는 과로·과적 운행 방지를 위해 화물차주에게 적정 운임을 보장하는 제도다. 올해까지 3년 한시로 운용돼왔는데 화물연대는 이를 상설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어 경영계는 난색이다. 정부는 화물차주 근로 여건 개선 방안 등을 놓고 화물연대와 논의해왔고 지난달에는 안전운임제 성과 평가 토론회도 열었다. 그런데 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화물연대가 느닷없이 총파업에 나선 것이다.
민주노총은 대선 직후부터 윤석열 정부를 ‘반(反)민주·반노동’ 정권으로 규정하고 강력 투쟁 방침을 밝혀왔다. 민주노총이 다음 달 2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전국금속노조가 다음 달 중순 20만 명 규모의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파업 일정이 줄줄이 잡히고 있다. 6·1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노조들이 줄파업으로 새 정부와 샅바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한 대응이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친노조 정책으로 ‘법 위에 군림하는 노조’의 탈법 행위를 사실상 부추겼다. 노사 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아예 뒤집어졌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노동운동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치 투쟁으로 변질되거나 일부 귀족 노조의 밥그릇만 챙기는 노동운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경제 위기 상황에서 불법 파업까지 판치면 경제 회복은 요원하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경제 주체들의 고통 분담과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동 개혁 등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