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코로나 확산에 경기 둔화 우려
골드만삭스 “공급망 차질 내년 10월에야 해소”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진자수가 수직상승하면서, 오미크론의 영향으로 경기가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와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영국 등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차질을 받는 상황에 주목하면서 1월 중·하순이 오미크론의 경제적 충격을 가늠할 수 있는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3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오미크론 확산세가 아직까지 경제지표 상으로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지만, 확산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1월 이후 경제지표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최근 1주간 하루 평균 확진자가 전 주보다 2배 늘어난 39만6490명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연말연시 연휴에 급증한 여행과 모임, 행정서비스 공백을 고려하면 감염 실태가 공식 기록에 적게 반영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유럽의 지난 1일 신규 확진자는 73만9684명으로 2020년 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작 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같은 확산세는 실제 경제활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은 최근 연휴 기간에 매일 1000건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되었으며, 일부 슈퍼마켓 체인들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직원들의 결근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소비수요가 강한 연말·연초에 노동 공급이 부족해지면, 공급 차질이 더 심화돼 경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실제 미국에서 애플스토어와 같은 일부 소매점포의 경우 아예 잠정적으로 영업중단을 결정하는 곳도 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잰디는 미국의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분기 대비 5.2%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영국 정부는 감염자 격리 때문에 학교, 병원 등 인력이 최대 25%까지 결근할 수 있다고 보고 비상대책 마련을 공공부문에 지시했다.
일단 오미크론의 확산세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1월 하순이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만약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인한 입원률 및 사망률 급등 현상이 의료체계 마비를 현실화시킨다면 전세계 경제는 2020년 코로나 확산 초기의 공포에 버금가는 충격을 다시 맞이할 수도 있어, 1월 중·하순까지 재확산의 파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재확산세에 따른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위험 역시 증폭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만 확진자 수 폭증에도 지난해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충격보다는 완만하게 지나갈 것이라는 낙관적 시나리오도 여전히 힘을 얻는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전세계 백신접종률의 상승과 주요국의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전환 등을 감안하면 오미크론의 확산에도 주요국이 재차 봉쇄조치를 강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면서 “경제활동의 둔화 정도가 현재까지는 델타 충격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박상현 연구원도 “국내 경기를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이 잠재해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전세계 코로나19 상황만 진정된다면 국내 경기 모멘텀 강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날 여지도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 국면에 접어드는 듯 했던 한국 경제가 고(高)물가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라는 암초를 만났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각국의 방역조치가 강화될 경우 공급망 차질이 심화하면서 물가는 더 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가계부채 급증으로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물가만 오르면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기 회복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슬로우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분간 코로나 확산 추이, 공급 병목현상, 중국 경제 상황 등이 국내외 경제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6일 한국은행은 ‘해외경제포커스’에서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글로벌 경기는 양호한 회복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상존한다”며 “다수의 단기적, 구조적인 위험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글로벌 경기 흐름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세계 경제와 물가 흐름을 좌우할 주요 리스크(위험) 요인을 짚어봤다.
① 코로나 확산 흐름
연말을 앞두고 코로나19 새 변이 ‘오미크론’이 기승을 부리면서 각국이 비상에 걸렸다. 오미크론이 델타 변이를 뛰어넘는 전파력을 보이거나 백신을 무력화할 경우 경기 회복이 지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오미크론의 치명률 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최근 코로나 확진자 증가와 오미크론 변이의 출현은 고용과 경제 활동에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코로나 백신이 오미크론 변이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질 경우 오미크론 확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오미크론이 델타 변이보다 전염력이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다만 백신 접종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백신 효과만 유지된다면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소비를 주도하는 대다수 선진국은 현재 백신 접종률이 60~80%에 달한다.
다만 겨울철을 맞아 북반구를 중심으로 코로나 확산이 거세지면서 일시적으로 소비와 내수가 주춤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일부 유럽 국가들은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자 전면 봉쇄를 포함한 강력한 방역조치를 실시했다. 한국도 지난달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행 이후 신규 확진자가 5000명대로 치솟자 다시 사적모임 인원을 제한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이동 제한 조치의 경제적 비용이 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방역 강도 완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도 “겨울철 감염병 확산세 심화에 따른 방역조치 강화가 다수 국가로 확산될 경우 글로벌 경기 회복이 제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② 공급병목 현상
공급망 차질이 언제쯤 해소될지도 시장의 관심사다. 올해 들어 선진국을 중심으로 에너지와 제품 수요는 빠르게 회복하는 가운데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여파로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생산·물류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 병목현상(supply bottleneck)이 나타났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나, 반도체 공장이 몰려있는 동남아 국가들이 셧다운(공장폐쇄)을 거듭하면서 수급난을 겪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지 못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차질이 지속되면서 자동차 판매량도 5개월 연속 감소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전 세계 자동차 생산차질 물량은 올해 2분기 260만대에서 3분기 346만대로 늘었다.
시장에서는 아세안 국가들의 백신접종률 상승,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 확대의 영향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급불균형도 내년 중 점차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코로나 확산 흐름에 따라 생산 차질 문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차량용 반도체 관련 글로벌 반도체 투자가 생산 증대로 이어지기까지 2~3분기가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 상황이 호전되는 시점은 내년 10월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③ 중국경제 둔화 우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다는 점도 세계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경제는 부동산 개발 회사 헝다(恒大·에버그란데)의 파산 위기, 전력난과 맞물린 원자재 가격 급등, 고강도 방역정책의 여파로 성장이 둔화되는 추세다. 류스진 중국 인민은행 금융정책위원은 “중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성장이 더디고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지나치게 높은 준(準)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년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5%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이 침체에 빠지면 대(對)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아시아 경제가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게 된다.
한국은행은 “중국 경제는 부동산 부문 디레버리징 지속, 공동부유 정책 강화 기조 등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며 “그간 부동산 기업과 지방 정부를 중심으로 이뤄진 과잉투자과 부채 누증, 공동부유 목표 추구에 따른 기업규제 강화 흐름 등은 향후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④ 미국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조기 종료를 시사하면서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란 기대감도 커졌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파월 의장은 오는 14~15일로 예정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테이퍼링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개월 연속 5%를 넘어서면서 연준의 장기목표(2%)를 크게 웃돌았다. 이에 일부 투자은행은 연준이 이르면 내년 3~4월쯤 테이퍼링을 종료하고 정책금리를 최대 3회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FOMC를 앞두고 오미크론 변이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평가한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오미크론 발생 이후 연준의 긴축 속도가 주춤해질 것이라는 시장 예상과 달리 오히려 물가 대응 차원에 더 매파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이라며 “FOMC 이전까지는 물가 지표나 오미크론 변수가 통화 긴축 속도에 대한 우려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⑤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
국제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도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전개 상황에 따라 가격이 크게 오르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금융센터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원자재 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엔 아직 시기상조지만, 타이트한 수급 여건을 감안하면 원자재 가격 상승 재료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배럴당 80달러선까지 뛰었던 국제유가는 주요국의 봉쇄 조치와 산유국의 증산 결정, 오미크론 공포에 60달러선으로 떨어졌다. 원유 공급은 늘고, 수요는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유가를 끌어내렸다.
김희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변이 바이러스의 강도와 여파가 향후 유가 흐름을 좌우할 것”이라며 “오미크론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될 경우 겨울철 계절적 난방 수요증대, 공급 부족 등이 추세적인 유가 강세를 뒷받침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