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거구·준연동형비례제 ‘위성정당’ 폐해 공감
16일 오전 여야 의원들은 선거제 개혁을 위해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을 구성했다. 이날은 참여의사를 밝힌 50여명 중 18명이 참석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처럼 입법권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지만, 다수 의원의 여론을 수렴하고 '초당적 총의'를 도출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해당 모임은 지난 9일 국민의힘 소속 김상훈·이종배 의원, 민주당 소속 정성호·전해철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 여야 중진의원 9명이 제안하며 시작했다. 이후 50여명 규모로 모임을 확대했다.
이들은 오는 30일 공식 출범 전까지 ‘국민을 위한 선거제 개혁’을 강조하며 모임 규모를 100명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당별로 온도 차이는 있지만 초당적으로 정치개혁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데에 공감대를 이룬 것은 지난 2000년 출범한 16대 국회 이후 처음이다. 특히 사표를 줄이는데 머리를 맞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투표는 했으나, 선거에 반영되지 않고 버려진 유권자의 표(사표)는 43.7%로 나타났다. 2명 중 1명의 표가 버려진 셈이다.
여당인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득표율 차이는 8%였음에도 의석수는 2배 차이가 났다. 특히 서울, 경기 인천 등 득표율은 12% 차이였는데 의석수는 무려 5배 차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정당이 바라는 것은 국민이 투표한 만큼 의석수를 갖고 국회를 다원적으로 운영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야당인 민주당은 소속 의원 10여명이 ‘위성정당’ 폐해를 낳은 준연동형비례대표제와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민주당은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전면 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정의당은 이은주 의원이 현행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360명으로 늘리고, 이 중 120명을 비례대표 의석수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당 득표율의 50%만 반영하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100%를 반영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전환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선거법 개정 논의는 지난해 12월 김진표 국회의장은 법정기한(총선 1년 전)인 2023년 4월 10일까지 선거법을 개정하자며 전원위원회 소집을 제안하며 시작했다.
이어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서 소선거구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하며 불이 붙었다.
이후 출범한 초당적 모임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직이 아니라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다만, 김 의장이 전원위원회 소집을 거론한 만큼 초당적 모임은 의원 개별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모임 출범을 제안한 중진의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총선을 1여년 앞둔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하고, 여야 의원 모두가 참여하는 열린 토론이 있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제도적 대안을 놓고 검토·심의하는 백가쟁명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야 의원들이 제각기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이 있고 내년 총선 전에 선거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기에 정치개혁 논의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이 제대로 된 결론을 낼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다. 각자 얽혀 있는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그것도 이유다. 하지만 의지가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뭐 있겠는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우리 정치는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 선거법 개정론자들은 대개 다당제 구현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적극 공감한다. 양당제를 기반으로 한 정치는 최악이다. 오직 상대를 반대하는 것으로만 우리 편을 조직한다. 선거 때마다 보는 양당의 조직 논리를 보라.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을 반대하는 사람들 다 모이라 하고,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막자며 모두 뭉치자고 한다.
선거에서 진 쪽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긴 쪽이 ‘삽질’하면 “거봐라” 하며 반사이익을 챙긴다.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배신자’가 된다. ‘다른 목소리’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잘 없고 혹시 상대편이 아닌지 의심만 한다. 내부 총질, 수박, 역선택, 똥파리, 반윤 우두머리…. 당내 정치에 동원되는 이런 어휘들이 다 비슷한 맥락에 있다. 이런 정치를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가면 또 “거봐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치에 질려 버린 지 오래지만, 선거 때 되면 누구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또 울며 겨자 먹기로 양당 후보 중 하나에 투표한다. 이러한 눈물을 머금은 선택들이 모여 다시 양당제적 환경을 유지하는 밑거름이 된다. 악순환이다.
다당제를 근간으로 한 정치환경이 구현되면 이러한 고통 유발 정치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수 있다. 정치적 지향을 논할 때 상대를 왜 반대하게 되었는지보다는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게 더 중요해지고 그게 좋은 정치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꼭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당제는 좋은 정치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유럽의 극우포퓰리즘이다.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이나 프랑스의 ‘국민연합’은 사회모순의 책임을 이민자 등 소수자에게 돌리면서 기득권을 ‘배신자’로 지목하는 정치문법으로 성장했다. 다당제를 구현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가 이런 지경이라는 게 보여주는 바는 뭘까? 다당제 구현은 좋은 정치를 달성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정치개혁의 성공 여부는 선거법 개정의 최종 목표가 좋은 정치 구현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정치란 뭘까?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자기 지향을 앞세우고 이를 설득하는 정치, 내부의 ‘배신자’ 찾아내기에만 몰두하는 지지층을 설득해 생산적 논쟁으로 이끄는 정치,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