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골 내준 뒤 김영권 동점골 이어 후반 추가시간 황희찬 결승골로 2-1 극적 역전승
1승 1무 1패로 우루과이와 승점·골득실 차까지 같지만 다득점 앞서 조 2위
한국 축구가 강호 포르투갈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마지막 3차전에서 2-1로 이겼다.
전반 5분 히카르두 오르타에게 선제골을 내준 뒤 전반 27분 김영권(울산)이 동점골을 뽑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벤투호는 무승부로 끝날 듯하던 후반 46분 황희찬(울버햄프턴)의 천금 같은 결승골이 터지면서 짜릿한 2-1 역전승을 일궜다.
우루과이와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뒤 가나에 2-3으로 졌던 한국은 이로써 1승 1무 1패(승점 4, 4득점 4실점)가 돼 포르투갈(2승 1패)에 이은 H조 2위로 각 조 1, 2위가 나서는 16강 무대에 오르게 됐다.
같은 시간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가나를 2-0으로 누른 우루과이도 1승 1무 1패(승점 4, 2득점 2실점)가 돼 승점과 골 득실 차까지 같아졌지만, 다득점에서 한국이 앞서 16강 티켓을 손에 넣었다.
이로써 한국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이후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뤘다.
역대 최고 성적인 4강 신화를 쓴 2002 한일 월드컵을 포함하면 역대 세 번째로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우루과이가 3위로 밀려났고, 1승 2패(승점 3)가 된 가나는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다.
가나전에서 경기 종료 시점과 관련해 주심에게 항의하다 퇴장당한 벤투 감독은 벤치에 앉지 못하고 VIP석에서 조국 포르투갈과의 대결에 임했다. 한국 벤치는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가 지켰다.
벤투 감독은 이강인(마요르카)을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시켰다. 이강인은 앞선 두 경기에서는 모두 후반에 교체 투입됐다.
가나전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월드컵 본선 한 경기 멀티 골이라는 새역사를 쓴 조규성(전북)이 2경기 연속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공격 2선 좌우에 '에이스' 손흥민(토트넘)과 이재성(마인츠)을 배치하고, 중앙에 이강인과 황인범(올림피아코스)을 세웠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임무는 정우영(알사드)이 맡았다.
포백 수비라인에는 왼쪽부터 김진수(전북), 김영권, 권경원(감바 오사카), 김문환(전북)이 섰고 골키퍼 장갑은 세 경기 모두 김승규(알샤바브)가 꼈다.
1, 2차전에서 선발로 나섰던 김민재(나폴리)는 우루과이전에서 입은 오른쪽 종아리를 다친 여파로 결국 포르투갈전에서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
포르투갈에서는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선발로 나와 손흥민과 A매치 첫 맞대결을 벌였다.
호날두는 오르타, 비티냐와 공격진을 구성했다.
미드필더로는 주앙 마리우, 후벵 네베스, 마테우스 누느스가 나섰다.
포백 수비라인은 디오구 달로트, 안토니우 실바, 페프, 주앙 칸셀루로 꾸렸고, 골문은 디오구 코스타가 지켰다.
포르투갈은 2-0으로 승리한 우루과이와의 2차전 선발진에서 6명을 바꿨다.
선제골이 절실한 건 한국이었으나 오히려 경기 시작 5분 만에 먼저 골을 내줬다.
포르투갈 후방에서 한국의 오른쪽 수비 뒤 공간으로 길게 연결된 공을 달로트가 잡아 김진수의 마크를 뿌리치고 몰고 들어가서 내준 컷백을 오르타가 골문 오른쪽에서 오른발로 차 넣었다.
포르투갈은 우리 수비진의 좌우 뒤 공간을 꾸준히 공략했다.
한국은 전반 16분 손흥민의 크로스에 이은 조규성의 헤딩슛이 골키퍼 선방에 막힌 뒤 흐른 공을 골문 오른쪽에 있던 김진수가 왼발로 차넣었으나 오프사이드로 득점은 무효가 됐다.
하지만 전반 27분 기어이 동점골을 뽑았다.
왼쪽에서 이강인이 왼발로 투입한 코너킥이 호날두 등에 맞고 골문에 앞에 떨어졌고, 공격에 가담한 김영권이 넘어지면서 왼발 발리슛으로 포르투갈 골문에 볼을 꽂았다.
수비수임에도 4년 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독일과 3차전에서 선제 결승골(2-0 승)을 터트렸던 김영권은 2개 대회 연속 득점을 기록했다.
한국은 전반 30분 비록 오프사이드 판정이 났지만, 김승규가 일대일 상황에서 호날두의 슈팅을 막아내며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전반 34분 달로트가 페널티아크 정면에서 왼발로 슈팅한 공도 김승규가 몸을 던져 쳐냈다.
한국도 전반 40분 페널티아크 부근에서 손흥민이 왼발로 슈팅한 게 골키퍼 정면으로 향해 아쉬움을 삼켰다.
이어 전반 42분 비티냐의 중거리 슛을 김승규가 쳐낸 뒤 이어진 호날두의 다이빙 헤딩슛이 골대 밖으로 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반은 양 팀 모두 변화 없이 시작했다.
후반 11분 한국의 역습 상황에서 조규성의 침투패스를 받은 손흥민이 페널티지역 안 오른쪽에서 오른발 슈팅까지 이어갔으나 수비수에게 먼저 막혔다.
한국은 후반 21분 이재성을 빼고 황희찬을 투입해 공격을 강화했다.
소속팀에서 당한 허벅지 뒤 근육(햄스트링) 부상에서 회복이 더뎌 앞선 두 경기에는 뛰지 못했던 황희찬은 이날 처음 그라운드를 밟았다.
우루과이가 가나에 전반을 2-0으로 앞선 채 마쳐 조 1위를 확정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 포르투갈도 호날두, 누느스, 네베스를 빼고 안드레 실바, 하파엘 레앙, 주앙 팔리냐를 내보냈다.
곧바로 한국은 상대를 바짝 몰아붙여 봤으나 황희찬의 패스를 받은 손흥민의 슈팅이 골키퍼 정면으로 향하고, 황인범의 왼발 중거리 슛도 골키퍼에게 막히는 등 좀처럼 추가 골을 넣지 못했다.
이후 김영권이 왼쪽 허벅지 부위를 다쳐 후반 36분 김영권과 이강인을 손준호(산둥 타이산)와 황의조(올림피아코스)로 교체해 포르투갈 골문을 노렸다.
결국 후반 46분 한국이 16강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주인공은 '황소' 황희찬이었다.
손흥민이 하프라인 부근부터 공을 잡아 혼자 몰고 간 뒤 상대 수비 세 명에 둘러싸이자 재치 있게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볼을 투입했고, 황희찬이 이어받아 골 지역 오른쪽으로 쇄도하며 오른발 논스톱 슛으로 연결해 승부를 갈랐다.
2018년 러시아 대회를 통해 월드컵 무대를 처음 밟았던 황희찬의 '월드컵 첫 골' 순간이었다.
경기 종료 후에도 가나-우루과이전은 끝나지 않아 센터서클 부근에 둥그렇게 보여 경기 결과를 지켜보던 한국 선수단은 우루과이의 2-0 승리가 확정되자 포효하며 16강 진출의 기쁨을 만끽했다.
가나, 2010년 남아공 대회서 수아레스 나쁜 손에 8강서 탈락
가나 수비수 아마티 우리가 16강 갈 수 없다면 우루과이도 막자
포르투갈을 꺾고 12년 만에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한국 축구대표팀의 조력자는 같은 조의 가나였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H조 최종전에서 2-1로 승리한 뒤 초조한 마음으로 같은 시간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진행 중이던 가나와 우루과이전을 지켜봤다.
후반 추가시간까지 0-2로 끌려가 사실상 16강 진출 가능성이 사라졌던 가나는 조별리그 통과에 딱 1골이 더 필요했던 우루과이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가나 골키퍼 로런스 아티지기는 마치 앞서고 있는 팀처럼 골킥 상황에서 시간을 끌었고, 오토 아도 가나 감독은 종료 1분을 남겨두고 선수를 교체했다.
한마음으로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막겠다는 가나 선수단의 의지를 엿볼 수 있던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가나가 우루과이에 0-2로 패배한 덕분에, 한국은 16강 진출을 위한 마지막 '경우의 수'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가나가 우루과이를 마지막까지 괴롭힌 배경에는 교체로 경기에서 빠져 경기 막판 우루과이 벤치에서 울고 있던 루이스 수아레스가 있다.
수아레스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 가나전에서 1-1로 맞선 연장전에서 도미니카 아디이아의 헤더를 마치 골키퍼처럼 쳐냈다.
수아레스가 퇴장당한 가운데 가나의 아사모아 기안이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결국 우루과이는 승부차기 끝에 4강에 올랐다.
12년 전 이 장면 때문에 가나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와 같은 조에 편성된 뒤 복수를 다짐했다.
나나 아쿠포아도 가나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는 우루과이에 대한 복수를 12년 동안 기다려왔다. 이번에는 수아레스의 '손'이 가나를 방해하지 못할 거로 확신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출신인 가나 미드필더 이브라힘 아유는 디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수아레스 사건 직전까지) 가나가 아프리카 최초로 4강에 진출할 것으로 확신했었다"면서 "그래서 가나 전체, 아프리카 전체가 수아레스를 미워한다"고 말했다.
수아레스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 가나전을 앞두고 "사과하지 않겠다. 그때 퇴장당하지 않았느냐"는 말로 가나 선수들의 복수심에 불을 지폈다.
결과적으로 가나는 우루과이에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됐지만, 우루과이의 발목을 잡은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경기 후 가나 수비수 대니얼 아마티는 "경기 중 우루과이가 1골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동료들에게 '우리가 16강에 갈 수 없다면, 우루과이도 못 가게 막자'고 이야기했다"고 털어놨다.
다만 아마티는 주장 앙드레 아유를 제외하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뛴 선수가 없다는 이유로 12년 전 '나쁜 손' 사건을 복수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마티의 매너 있는 말과는 달리, 가나 팬들은 우루과이의 불행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알자눕 스타디움을 찾은 가나 팬은 자국팀이 경기에서 졌는데도 바로 뒷자리의 우루과이 팬을 바라보며 "코리아, 코리아"라고 외치며 노래를 불렀다.
한 가나 팬은 영국 스포츠매체 토크 스포츠와 영상 인터뷰에서 한껏 웃으며 "수아레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이제 은퇴하자. 가나도 16강에 못 갔지만, 우루과이를 떨어뜨려서 무척 기쁘다"면서 "(우루과이를 제친) 한국과 포르투갈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이번 대회가 수아레스에게는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가나 국민들은 수아레스의 마지막이 불행으로 끝난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