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의 약속, 그리고 否認 사이
독일 통일·소련 해체 거치며 몸집 불린 나토
중·동부 유럽 14개국 등 가입국 30國으로 확장
"1990년 수준서 단 1인치도 동진하지 않을 것"
러, 美 국무장관 베이커의 약속 서방이 파기 주장
종전 조건으로 나토 가입 20~25년간 중단 요구
우크라전쟁은 자강 없는 '러 적대정책'이 부른 충돌
양측 평화회담 회의적...소모전 장기화 우려

“모든 방향으로 국가를 확장시킨다”
17세기 중반 러시아 외무장관 오르딘 나시초킨이 규정한 러시아의 외교관(觀)이다. 300년도 더 지난 이 말은 지금의 러시아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게 들린다. 러시아는 2008년 8월 조지아(옛 그루지야), 2014년 3월 크림반도에 이어 2022년 2월에는 우크라이나까지 서쪽으로 팽창했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는 줄곧 유럽의 군사동맹인 나토의 개방정책이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한 달여 동안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 역시 서방과 나토의 배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서방과 러시아(소련) 지도자들 간에 1990대에 이뤄진 ‘약속’을 서방이 깨버렸기 떄문이라는 것이다.
나토는 1949년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12개국이 전후 러시아의 유럽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출범한 군사동맹이다. 1990년 독일 통일, 1991년 소련 해체를 거치며 회원국은 30개국으로 늘었다.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옛 소련 주도 군사동맹인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과 발트3국 등 동구권 국가들도 합류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이 30년 전 독일 통일(1990년 10월) 때 “나토는 1인치도 동쪽으로 확장 안 한다”고 해놓고 계속 어겼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나토는 구소련과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러시아가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과 미국의 41대 조지 H. W. 대통령 당시 재임했던 제임스 베이커 전 미 국무장관의 발언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양(兩)진영이 맺은 어느 협정·조약에도 이런 문구가 명문화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통일 독일의 최종 지위와 나토 가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모스크바에서 만났을 당시 베이커 전 장관은 나토의 관할권이 동쪽으로 1인치도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베이커로부터 이 ‘1인치 약속’을 세 번이나 들었다고 했다.
미국이 러시아에게 나토가 1990년 수준에서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건 미국 국무부 문건에서도 나타난다고 독일 도이체벨레(DW)는 지적했다. 하지만 베이커의 이 발언이 백악관에서 파장을 일으키면서 서방측은 이후 베이커의 발언에 대해 부인하고 나섰다. 결국 독일 통일 최종 합의 문구에서 나토 동진은 빠졌다. 결국 나토는 통독(統獨) 이후 5차례에 걸쳐 구(舊)소련권의 중·동부 유럽국가 14개국을 새로 받아들였다.
1994년 러시아·미국·영국은 ‘부다페스트 각서’를 체결했다. 신생 독립국 우크라이나가 자국에 배치된 1900개의 러시아 핵탄두를 러시아로 보내는 대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주권·국경을 존중하고, 대신에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2014년 푸틴은 크림 반도를 강제 합병했다,
이후 나토는 2008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에서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공식 환영했다. 즉각 러시아는 조지아를 침공, 친러시아 지역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분리 독립시켰고, 그로부터 14년만에 우크라이나에 전면전을 감행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요건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 러시아 침공 임박 전까지 나토 가입을 지속 추진하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치 않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근 발언에서 “나토 가입이 불가능한 것을 안다”며 한발 물러섰다.
러시아는 초안 단계인 종전 협상문에 앞으로 20~25년 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중단, 민족주의 세력 아조프 부대 해체,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 지역 독립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2019년 5월 취임 때 야심찬 포부와는 정반대의 그림이다. 당시 주 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의 동향 보고를 보면 그는 대통령 취임식에 서방 인사들만 불렀을 뿐 러시아 인사는 아예 초청하지 않았다. 그는 취임사에서 “잃어버린 영토(크림) 회복, 나토 표준을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우크라이나어 사용 의무화를 제정, 소수 민족과 일부 국경 지역에서까지 모든 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로 수업 할 것을 강제했다. 러시아계 주민이 상당수 있지만 러시아 색깔을 아예 빼려고 한 것이다.
201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의해 강제병합된 뒤 우크라이나 다수 국민들 사이에서 반러 정서가 크긴 했다. 하지만 자강(自强)이나 서방의 뚜렷한 안보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노골적인 적대 외교가 얼마나 위험한 지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보여준다.
나토는 이번 전쟁에 불개입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이는 나토 규약 5조(동맹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전체 동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집단안보 원칙)에 근거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17일 독일 베를린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의 기자회견에서 “나토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 측의 자국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no-flight zone; NFZ)’ 설정 요구를 거부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계획대로 수도 키이우를 단기일에 점령하지 못하자 다른 주요 도시를 장악해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는 서방 정보기관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군이 키이우 공략에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지만 남부지역을 집중 공격해 해안도시 마리우폴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동향에 대해 미국 정보당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술 변화, 즉 `플랜B`로 전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푸틴 대통령의 당초 목표는 수도 키이우에 바로 진격해 속전속결로 함락시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축출하는 것이었던 걸로 미국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하지만 생각보다 완강한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막혀 키이우 공략이 진전을 보지 못하자 다른 주요 도시를 포위 공격해 점령하고서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하면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전술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같은 압박 전술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를 달성하고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돈바스 지역을 가져가려 하는 것으로 미 바이든 행정부는 보고 있다고 WSJ은 설명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한 이후 크림반도와 러시아 서부를 잇는 땅을 확보하고 분쟁지역인 돈바스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려 해 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같은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주요 도시에 대한 포위 공격을 이어가는 등 공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 영토와 중립국화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푸틴 대통령은 지금까지 확보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계속 점령하면서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그는 확실히 `포위 전술`(siege tactics)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국민 입장에선 수주나 길게는 수개월간 러시아군의 원거리 포격이나 폭격에 시달려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은 마리우폴과 같은 도시에 대한 공략에서 이같은 포위 전술로 전환했는데, 이는 2차 체첸전쟁 때인 1999~2000년 그로즈니를 공격할 때 쓴 전술이기도 하다. 이 전쟁으로 푸틴은 총리로 올랐고 대통령까지 됐다.
푸틴 대통령은 공격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게 되면 전쟁 목표를 확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수도 키이우를 포위하고서 결국 점령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푸틴 대통령의 플랜B 분석은 공식적인 정보 평가 결과는 아니고 일부 정보당국 관계자들의 시각이라고 NYT는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전술은 변했을지 모르되, 그의 목표는 변함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폴란드 대사를 지낸 바 있는 다니엘 프리드는 "푸틴 대통령의 목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라며 "단지 그의 전술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프리드는 "푸틴 대통령이 지금 공격을 퍼붓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저항하기 때문"이라며 "우크라이나 정부는 결국 제거돼야 한다. 이게 스탈린식 숙청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평화협상에 대한 전망은 밝지 못하다.
존 허브스트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가 전장에서 전술을 바꿨다는 분석에 동의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그의 요구사항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푸틴이 협상에 응한 것은 러시아 국민에게 자신이 외교에 열려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서방으로부터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허브스트는 분석했다. 그는 현재 협상에 러시아 측에선 고위급이 관여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허브스트는 "푸틴이 실무자급 대화에 나선 것은 전장에서 잘 풀리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는 여전히 전쟁에서 이기고 싶어하며 자신의 과격주의적인 요구사항을 고집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CNN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관계자들을 인용해 협상에서 푸틴 대통령이 그의 초기 요구사항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어 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CNN은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공화국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고 밝힌 터키 대통령실 관계자의 현지 언론 인터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