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플레 압력 고조
공급 제한으로 WTI도 90弗 돌파
물류난·이상기후에 식료품값 껑충
일부선 "사회적 불안 확산 우려"
항공유 한달새 27.3% 급등
대한항공, 고정비 지출 절감 나서
롯데케미칼, 싼 LPG 사용 확대
브렌트유에 이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세계 식료품 가격도 11년 만에 최고로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3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날 WTI 가격은 전장 대비 2.01달러(2.28%) 급등한 90.27달러로 마감했다. CNBC는 “WTI가 마지막으로 90달러를 넘었던 때는 지난 2014년 4월”이라고 전했다. WTI보다 다소 높게 가격이 형성되는 브렌트유는 이미 지난달 26일 90달러를 넘었다.
원유 가격이 고공 행진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수급이다. 각국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수요가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이 포함된 OPEC+ 등 주요 산유국들이 추가 증산을 꺼리고 있어 공급은 여전히 제한된 상태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등 지정학적 위기도 국제 유가 상승을 이끄는 요인이라고 CNBC는 설명했다.
국제 유가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한창인 2020년 4월 배럴당 20달러 아래로 떨어진 후 맹렬하게 올랐다. 2021년에 50%가 올랐고 올 들어 여기서 20%가 더 올랐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올해 유가로 배럴당 120달러를 예상하고 있을 정도다. 외환거래 브로커 회사 오안다의 에드 모야는 “원유 수급이 대단히 타이트해 공급 부분에 약간의 충격만 있어도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며 “OPEC+가 점진적 증산 방침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유가가 곧 100달러를 향해 달려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식료품 가격도 계속 치솟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매달 발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FFPI)가 1월 135.7을 기록해 ‘아랍의 봄’ 사태로 국제 식량 가격이 급등했던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콩 등으로 만드는 식물성 기름의 경우 FFPI가 처음 발표된 1990년 이후 최고치로 올랐다.
NYT는 “국제 식료품 가격이 급등한 요인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공급망 차질, 이상기후, 에너지 가격 급등”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물류 비용도 상승했고 노동력마저 부족해 비용이 더욱 커졌다. 미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모리스 옵스펠드 선임연구원은 “식품 가격 앙등으로 사회적 불안정이 급속도로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하면서 산업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유가 급등에 더해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대확산과 물류비 급등 등 악재가 쌓이면서 기업들은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마련에 나섰다.
6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항공유 가격은 배럴당 105.7달러다. 한 달 전(83달러) 대비 27.3%, 1년 전보다 89% 급등했다. 항공유는 국내 항공사들의 고정비용 중 20~30%를 차지한다. 통상 유가가 올라가면 항공유가도 상승한다. 대한항공의 경우 항공유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3000만달러(약 36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국내로 들여오는 원유 기준인 두바이유의 가격이 최근 7년 만에 90달러를 돌파하면서 항공유의 고공행진은 지속될 전망이다.
항공사들은 저유가일 때 항공유를 미리 구매하는 헤지를 통해 유가 급등에 대응하고 있지만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선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국제선 여객수요 부활이 시급하지만 섣불리 노선 운항을 재개하면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지난해 화물영업 호조로 역대 최대인 1조4644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대한항공은 올해 고정비 지출 절감 등을 통해 유가 급등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비용 상승 부담을 느끼는 것은 해운업계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의 연료 사용 규모는 2020년 기준 5000억원이다.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지난해 3분기 기준 비용이 6800억원까지 올라갔다.
석유화학업계도 울상이다. 유가 상승으로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원료인 나프타 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의 쌀’이라 불리는 나프타는 원유에서 정제돼 나온다. 나프타가 오르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유화제품 가격도 같이 상승해야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중국 화학사들이 에틸렌 등을 중심으로 증설에 나서고 있어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구매처에 전가하는 방법만으로는 여의치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내 석유화학사들은 원료 다변화로 유가 불확실성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전남 여수·대산 에틸렌 공장 원료로 나프타 대신 액화석유가스(LPG) 사용량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LPG 가격은 나프타 대비 80~90% 수준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평소 LPG 사용량은 20% 수준이지만 연말까지 40%로 높일 계획”이라며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 대비해 탄력적으로 원료를 조정할 수 있도록 설비 개선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